해체되는 도심 상권…코로나19에 걸린 서울의 변화

해체되는 도심 상권…코로나19에 걸린 서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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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는 도심 상권…코로나19에 걸린 서울의 변화


■ 인파 북적대던 명동, 코로나19에 유례없는 공실 사태

서울 대표 상권 명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역대 경제 위기 때도 끄떡없던 명동 상권이 말입니다.

서울 명동에서 40여 년을 보내며 건물주가 된 A 씨는 "그 어려운 IMF 때도 중앙통엔 '임대'라고 써 붙인 빈 점포가 딱 하나 있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2015년 메르스 때도 상권 위축은 석 달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문 닫은 가게는 두세 군데에 불과했고, 이내 "밀물처럼 해외 관광객들이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하늘길을 1년째 막고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부터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핵폭탄을 맞은 거지."

임대인이면서 임차인으로 여전히 명동에서 살아가는 A 씨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명동의 위기는 공식 통계에도 드러납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 조사에 따르면, 명동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28.5%에 이릅니다.

3차 유행이 지나간 지금, 체감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A 씨는 "명동 1번가는 60~70% 폐점했고 중앙로는 40% 정도가 가게 문을 닫았다."고 말했습니다.

임대료를 낮춰도 비는 가게는 늘고 있습니다. 명동 상권 활성화를 위한 건물주들의 단체인 명동관광특구협의회는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하자'고 호소하는 소식지를 회원들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임차인들은 떠나고 있습니다.

건물주들 사이에선 '어떤 집은 90%를 깎아줬다', '임대료를 하나도 안 받겠다고 했는데도 직원 월급을 감당할 수 없는 임차인이 나갔다'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상권 붕괴 앞에서 임대인도, 임차인도 모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몇 년 새 공시가격 현실화로 재산세와 종부세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임대인들도 경제적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A 씨는 "건물들이 공실이 되면 명동 전체가 공동화되어버릴 수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 상업지역 타격, 업무 지역 선방…지역별 대책 필요

7억 4,322만 명. 지난해 서울 권역 600여 개 지하철역에서 전년 대비 감소한 승차인원입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세훈 교수 연구팀(도시환경설계)은 미국 스탠퍼드대학 아태연구소와 함께 '코로나 스터디그룹'을 구성해, 코로나19가 변화시킨 도시활동을 빅데이터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이 서울시의 지하철역 승차인원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유동인구가 얼마나 급감했는지 드러났습니다.

2019년 주간 기준으로 약 5천만 명이었던 지하철역 승차 인원이 1, 2차 유행 기간에는 4천만 명대로 줄었고, 3차 유행기에는 2,70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전년과 비교하면 지하철을 이용한 이동이 55%에 그쳤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서울역 같은 교통 중심지를 제외하면, 명동은 경마공원과 함께 유동인구의 감소 폭이 가장 컸습니다. 집단 감염이 발생하거나 집합금지 업종이 밀집한 상권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영향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양상과 별개로, 지역별로 차이가 났습니다. 김세훈 교수는 이를 '도시 격차'라고 표현했습니다. 코로나에 영향을 받거나 피해를 입는 정도, 또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일상성을 회복하는 정도가 공간적으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시내에선 상업지역의 유동인구가 크게 줄었습니다. 명동, 종로3가, 홍대입구, 신촌, 이태원은 전년보다 발길이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경마공원, 종합운동장처럼 여가를 보내던 곳도 인파가 사라졌습니다. 유동인구가 급감한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정주 인구보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소비, 여가 인구가 많았던 곳들입니다.

반면, 가산 디지털단지, 여의도, 역삼·선릉역 일대는 상대적으로 유동인구 감소 폭이 작았습니다.

중심 업무 지역으로 주요 기업과 상업 지역이 골고루 밀집해 있는 지역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가장 높았던 시기에도 정부의 재택근무는 권고에 그치면서, 이 지역은 활력을 유지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도시 격차는 정부의 피해 지원도 지역 특성에 맞게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김 교수는 "상권 해체를 일부 경험한 상업지역, 소비지역, 문화 활동 중심지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충격이 상당기간 진행될 수 있다."면서 "해체된 상권을 복원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긴 노래방을 지역에 필요한,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임대공간으로 운영한 일본의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코로나로 취약한 지역에서 공간의 성격, 운영방식 등을 바꾸면서 필요한 사회 변화를 수용해 나가는 방식을 고민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기구,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상권 유지를 위한 지원체계를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한국인이 코로나를 버틴 방법, '집콕'보다 '동네 생활'

코로나로 인한 도시 격차가 유동인구 증가로 나타나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대치동, 목동, 상계동 같은 주거지역은 지난해 생활인구가 재작년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 도시 활동이 위축된 가운데, 주거지역은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인 겁니다.

연구팀은 코로나 기간 사람들이 이동 빈도를 줄이면서도, 생활 기반을 두고 있는 곳에서 오래 체류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하는 행태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며 집과 직장 주변에서 도시의 풍부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생활권 단위에서 자족성을 높이려는 변화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집 안에서 체류하는 시간 자체는,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코로나가 거세게 확산한 국가에선 주거지역 내 평균 체류시간은 재작년보다 한때 40%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1차 유행과 3차 유행기에도 평일 주거지역 내 체류시간의 증가폭이 15% 수준을 넘지 않았습니다. 주말과 명절, 연휴에 순간적으로 급증한 수치가 나타난 정도였습니다.

연구팀은 한국인은 집콕 시간보다는 동네에서 체류한 시간이 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교수는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코로나 기간 한국 도시의 일상성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면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활동 위축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또 굉장히 빨리 복귀하는 회복 탄력적인 특성을 보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코로나의 충격은 도시 생활을 급격히 바꿔놓았다기보다는 원래 진행 중이던 여러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면서 "코로나에 취약한 지역들이 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도록 정책이나 도시 구조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로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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