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서 유해물질 나왔다는데…제품명 공개 안 한 이유는?
루비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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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21:13
소파에서 유해물질 나왔다는데…제품명 공개 안 한 이유는?
기사입력 2021-04-01 12:03
소파 하나 사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합니다. 좀 좋아 보이는 걸 찾다 보면 수백만 원은 우습게 들어갑니다. 유명 브랜드에 천연 소가죽에...좋은 건 알겠지만 주머니 사정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비교적 저렴한 합성가죽 제품에 눈이 가게 됩니다.
■ 가죽을 가죽이라 하지 못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합성가죽 소파를 검색해봅니다. 제품설명란을 보니 마감재가 '합성가죽(PVC)'이라고 표기돼있습니다. PVC? 네 평소에 들어보셨던 그 PVC가 맞습니다. Poly Vinyl Chloride. 염화비닐을 주성분으로 하는 플라스틱입니다.
합성가죽이 왜 플라스틱일까요? 합성가죽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동물의 피부를 그대로 가공하는 천연가죽과 달리 합성가죽은 면직물 위에 발포층을 입히고 그 위에 다시 코팅을 하며 가죽패턴을 찍는 방식으로 생산됩니다. 발포층에 PVC가 사용되는데 플라스틱인 만큼 딱딱하겠죠? 말랑말랑하게 해주려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라는 화학물질을 넣어줘야 합니다.
실험에 쓰일 합성가죽을 잘라내는 모습
■ 19개 제품 중 16개 제품에서 무더기 검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키는 환경호르몬입니다. 생식기능은 물론 간이나 신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한 번씩 소비재 관련 기사를 쓸 때 마주하는 단어인데, 얼마 전엔 다이소에서 파는 아기 욕조에서 검출돼서 큰 논란이 됐었죠? 소파는 어떨까요?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 판매 중인 합성가죽 소파 19개 제품을 수거해 조사해봤습니다. 바닥 방석 부분 가죽을 뜯어 실험한 결과 16개 제품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검출됐습니다. 유럽연합 허용기준을 적용했을 때, 기준치의 57배에서 320배에 이르는 많은 양이 나왔습니다.
16개 제품 가운데 3개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에 납까지 검출됐습니다. 1개 제품은 가소제에 카드뮴까지 같이 나왔습니다.
소비자원 측은 "소파는 가족구성원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장소 중 하나이며, 특히 피부에 직접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자동차가 됐다가 언덕이 됐다가 침대도 돼주는 소파
■ 판매는 중단됐지만 제품명 공개할 수는 없는 현실
소비자원이 실험 결과를 통보하자 문제가 된 16개 사업자는 해당 합성가죽 소파를 더는 판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취급 중인 모든 합성가죽 소파의 품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앉아있는 소파가 문제 제품이면 어쩌죠? 제품명을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비자원은 제품명 공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합성가죽 소파의 경우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허용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권고 이상의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국내에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기준 위반이 아니게 된, 웃픈 상황입니다.
소비자원은 다만 "판매량 상위 브랜드 위주로 실험 대상을 골라왔다"고 덧붙였습니다.
발빠르게 기준 마련한 유럽연합, 국내 제도 정비 시급
앞서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소비자원의 이번 실험은 유럽연합 허용기준(유럽 신화학물질관리제도. EU REACH)을 적용한 것입니다. 유럽연합은 소파를 포함해 피부접촉이 이뤄지는 모든 소비재에 유해물질 안전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원은 국가기술표준원에 관련 허용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다고 천연가죽은 선이고 합성가죽은 악인 것은 아닙니다. 가죽을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되고, 저렴하고, 가공이 쉽다는 등 합성가죽의 장점도 많습니다. 안전기준이 빨리 정비돼 믿고 살 수 있는 안전하고 실용적인 합성가죽 소파가 많이 등장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