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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월드컵 최종 예선 조 편성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한국을 피해 B조에 배치됐습니다. 모국인 "한국과는 부담스러워 안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말해왔는데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B조 최약체로 꼽히는 베트남이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습니다. 일본(FIFA 랭킹 28위), 호주(41위), 사우디아라비아(65위), 중국(77위), 오만(80위) 등과 경쟁해 2등 안에 들어야 합니다. 최소 3위는 해야 플레이오프라는 '패자부활전'을 노릴 수 있습니다. 5개국 대표팀 모두 세계랭킹이 베트남보다 높습니다.
박 감독은 최종 예선 조 추첨이 끝난 뒤 아시아축구연맹(AFC)과 영상 인터뷰에서 "우리보다 전부 강한 팀들이기 때문에 도전하는 자세로 준비해 상대하겠다"고 말했는데 당연한 수순입니다.
박 감독은 "우리는 (최종 예선) 첫 진출이고, B조에 속한 국가들은 각각 색깔 있는 축구를 하는 팀들이다. 이런 팀들과 만나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 팀들과 경기를 통해 우리는 발전할 것이다. 끝까지 경쟁해 도전하는 자세로 대회에 임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겉보기만 들어서는 '베트남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 정도로 삼겠다'는 겸손한 발언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박 감독 머릿속에는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날 그가 "우리 선수들이 상대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 지지 않으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부임한 이후 어느 상대를 만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하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실제 박 감독이 부임하기 전 베트남 축구의 색깔과 그가 부임한 이후 베트남 팀은 전혀 다른 팀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전까지 베트남 축구는 '신장과 체력의 열세'를 기정사실화하고 일본식의 세밀한 축구를 추구하는 편이었습니다. 잘게 썰어가는 패스를 통해 전진하고 이를 통해 기회를 잡는 티키타카 축구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박 감독은 거칠기로 따지면 세계에서 두 번째면 서러워할 K리그의 터프함을 베트남에 이식했습니다. "베트남이 체력적으로 약한게 아니다"며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선수비·후역습 전략을 기본으로 반격할 때 터프하게 쫓아나가는 아름다운 축구 스타일을 정립했습니다
이전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지역별로 갈려 서로 얘기도 하지 않을때 박 감독 특유의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정신적으로 '원팀'을 만들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통일이 된 베트남이란 국가는 남쪽과 북쪽간 갈등이 꽤나 있는 편입니다. 밥 먹을 때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서로 대화를 하지 않자 앞으로 밥 먹을 때 스마트폰을 가져오면 벌금을 낸다고 선언하고, 다음 날 본인이 스마트폰을 가지고와 '1빠'로 벌금을 냈습니다.
강한 팀을 보면 위축됐던 마음가짐을 싹 바꿔 누가 와도 쉽게 지지 않는 정신력을 키웠습니다. 선수의 고향과 부모 직업, 어디가 아프고 뭐가 불편한지를 꼼꼼하게 챙기는 '파파 리더십'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박 감독이 이룬 성과로 증명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베트남이 어떤 팀인지를 제대로 알려면 박 감독 이후에 치른 전적만 가지고 따져보는 게 맞습니다. 팀 자체가 달라졌으니까요.
먼저 B조의 최강자 일본을 봅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이긴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베트남 팀은 일찌감치 나온 선제골을 잘 지키며 1대0으로 일본에 승리했습니다.
물론 당시 일본팀은 세대교체를 명분에 걸고 와일드카드 없이 21세 이하 선수들로만 대표팀을 꾸리긴 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베트남보다는 훨씬 위였습니다. 착실하게 대비하고 전술을 잘 짜고 또 운이 좋으면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 강자인 호주를 볼까요. 베트남 U-23 팀은 2018년 AFC 축구 선수권 대회 조별 리그에서 한국과 호주, 시리아와 같은 조에 편성됐습니다. 여기서 만난 호주에 1대0으로 승리하며 결국 한국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올랐습니다. 호주를 밀어내고 2위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최종 예선 조 추첨 직전 베트남 수비수 부이티엔중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과 꼭 한 조에 속하고 싶다. 중국과 함께라면 꿈에 그리던 최종 예선 1승도 할 수 있다. 시리아와 오만 등도 우리가 잘 준비만 한다면 두려워 할 상대는 아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2019년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2 대표팀은 친선 경기를 통해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동일 연령 중국 대표팀을 만나 2대0의 쾌승을 거뒀습니다. 오만과 비슷한 레벨로 평가되는 시리아는 2018년 베트남 U-23 팀이 0대0으로 비긴 바 있습니다. 같은 해 이라크를 맞아서도 3대3으로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고, 승부차기에서 5대3으로 이라크를 꺾은 바 있죠. 물론 나중 대회에서 일본과 이라크에 패배한 적도 있습니다만, 요점은 지금의 베트남은 B조에 속한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결코 쉽게 지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베트남 현지 매체는 내심 조 3위의 성적을 기대하는 듯 합니다. 현지 매체 징닷컴은 "월드컵 최종 예선은 2.25개의 티켓이 있다. 베트남의 힘으로 는 조금 꿈 같은 일이지만, 3위를 차지해 0.25티켓을 목표로 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3위에 오르면 A조 3위와 대결을 거쳐 오세아니아 1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하기 때문).
베트남에서 숱한 기적의 역사를 썼던 '박항서 매직'은 어디까지 통하게 될까요. 박항서의 지도력이 또 한번 빛을 발하기를 바라봅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http://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4818660?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