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가장 큰 고대무덤 이야기에 대해

한반도 가장 큰 고대무덤 이야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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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며칠 개드립에 올라온 글들이 있다.



 



https://www.dogdrip.net/313461194



 



https://www.dogdrip.net/index.php?document_srl=313729377&comment_srl=313730796#comment_313730796



 



바로 장고봉 고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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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 해주는 학설이 나올까봐 닫았다고 여기는 개붕이들도 있고 우리나라 사학계가 조작을 일삼는 '어느나라' 처럼 되버릴까 우려하는 개붕이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장고봉고분은 이미 학계에서는 잘 알려져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발굴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학계는 백제-일본의 관계에 대해서 취사선택하고 있지도 쉬쉬하고 있지도 않다. (재야사학이라는 정신나간 사이비역사학은 저리꺼지고 ㅎ;;)



 



 



 



 



다음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이다.



 



방산리 장고봉고분은 1986년 2월 7일에 전라남도기념물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이 처음 알려진 것은 일본 고유의 무덤이라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한반도에도 존재하는지 논쟁이 뜨거웠던 1984년 말이며 1985년 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강인구 교수에 의한 봉토측량조사가 있었다.



(중략)



고분의 도굴여부와 정비를 위한 시굴조사가 2000년에 있었다. 



 



장고봉고분은 외형과 널방 구조에서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관계가 있는 고분이다. 이런 점에서 피장자와 축조집단의 성격을 두고 학계의 해석이 제 각각이다. 이 고분을 포함한 전방후원분 형태의 고분들은 영암 태간리자라봉고분,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군을 비롯한 전라남도 해안지방 및 내륙을 중심으로 한 서·남해안에서 10여 곳이 알려져 있다. 이 고분의 조영시기는 4∼5세기대로 추정되며, 영산강 유역의 재지세력이 백제와 왜의 교섭 속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45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해남방산리장고봉고분(海南方山里長鼓峰古墳))]



 



 



 



학계에서는 백제지역에 일본'인'들이 있었음을 크게 부정하지도 않는다.



('지배세력' 존재는 부정한다. 한반도에 일본의 지배세력이 있었다는건 임나일본부설이고 개소리다.)



 



이와 관련된 논문들도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궁금한 대학생 OR 대학원생 개붕이들은 학교 도서관에 전방후원분, 백제, 마한과 같은 검색어를 포함 시켜서 검색해보자.)



 



몇몇 논문을 가져와보았다.



 



馬韓 殘餘故地 前方後圓墳의 造成 背景(마한 잔여고지 전방후원분의 조성 배경) 이라는 논문이다. 2012년 동아시아고대학회지에 실렸다.



 



논문을 그대로 가져다 올리는건 저작권 철퇴를 맞는 행위이므로 초록만 일부 가져왔다.



 



 6세기 중엽경에 백제 조정에 왜계 관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한 연원은 왜와 수교한 근초고왕 이래 백제에서 왜로의 박사(博士) 파견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한성 함락이라는 비상시국과 고토회복이라는 숙원 사업 속에서 백제와 왜는 이해가 일치하였다. 이때 백제와 왜는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상황에서 공동정권적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랬기에 백제와 왜간의 관인들이 상호 왕래하여 각기의 조정에 배치될 수 있었다. 



 



백제 지역에서 일본인이 존재했음을 부정하고 있지 않다.



 



고분으로 본 6세기 전후 백제와 왜 관계라는 논문도 있다. 이 논문은 2017년 한일관계사학회에서 발간했다.



 



이 역시 초록만 일부 가져와 보았다.



 



5세기 후엽이 되면 백제 중앙과 야마토정권은 왕족의 외교, 선진문물 전파 등의 밀접한 관계속에서 백제계의 도래인에 의해 초기 횡혈식석실이 출현하고, 이에 반대급부로써 야마토정권은 인적 · 물적자원을 지원하였다고 보았다. 그 과정에서 야마토정권이 九州지역 세력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九州지역의 석실과 전방후원분이 영산강 유역에 축조된다. 결국 단순히 석실의 형태만을 통해 백제와 畿內, 영산강 유역과 九州처럼 단절적인 관계로 파악하기보다, 이 시기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백제 중앙-畿內-九州-영산강유역으로 연결되는 다자간의 관계가 상정된다.



 



이 외에도 수많은 백제-왜 관계를 다룬 논문과 전방후원분 형태에 대한 연구가 많다. 그러니 한국의 사학계가 '어떤나라' 처럼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3줄요약



 



1.가장 큰 고분 발굴한적 있음



2.임나일본부설 지지하는 물건 나올까봐 숨기는것도 아님



3.한국 고대사는 자료가 좆도 없어서 숨길 것도 없음 뭐 나오면 우루루 몰려가서 보기 바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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