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독립유공자
후세 다쓰지
박열의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랑 이분이 유일하게 독립유공자이다
실제로 2004년 건국훈장을 수여받았다
生いきべくんば 民衆みんしゅうとともに、死しすべくんば民衆みんしゅうのために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한다면 민중을 위해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조선 문제는 동양의 발칸 문제이다. 조선은 세계 평화와 혼란을 좌우하는 열쇠이다. 전 세계의 문제이자 전 인류의 문제다
이사람이 업적
이사람이 한일이 무엇이냐
일본 변호사 출신이며 한국에서 한반도 병합이 침략이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책을 내고 일본 경찰들한태 조사받는일을 계기로
2.8운동 최팔용 송계백선생님들을 변호했으며
1924년 의열단 김지섭 선생님을 변호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변호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변호였다 하지면 변호 도중 가네코 후미코가 의문사 하면서 흐지부지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관동 대지진 시절 일본에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군 일본경찰에 의한 조작된사건이라고 강력하게 비판을 했다
그이후
1930년도에 일본에 돌아가 자유법조단 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으며
일본 공산당을 탄압을 강력하게 비판하자 법정모독 이라는 근거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했으며
신문지법이랑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행을 하였다
그의 마지막 업적
1945년 광복이후 변호사 자격을 다시 회복했고 (한신 교육 사건)이나 도쿄 조선 고등학교 사건 등, 재일 한국인 사건 및 노동 운동에 대한 변호를 맡았다. 1946년에는 한국을 위한 조선 건국 헌법 초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후 6.25까지 목격한 그는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53년 9월 13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